http://lifeislove.kr/LILY/9201저는 고통에 매우 둔한 편이랍니다. 아니, 고통을 잘 참는 편인 것 같습니다. 왠만한 고통과 피곤함과 스트레스는 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일수록 저는 태연한 척 하거나 더 열심히 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내가 챙겨야 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말이죠(그들이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저는 언제나 쾌할하고 때로는 호탕(?)하게 잘 웃습니다. 사람들의 별 것 아닌 이야기에 늘 집중해서 경청하려고 애쓰고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름 저는 사회적으로는 괜찮은 수준 정도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고, 착한 아들, 착한 남편(?), 믿음직한 형(?, 철 맞나? ;; ), 스마트해 보이는 동료(ㅋㅋㅋ) 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왠지 뒤로 갈수록 부끄러워지네요 ㅋㅋ 스마트? 캬캬캬

착한 마눌, 토깽이 같은 자식새끼도 있으니 이쯤되면 저는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아이구 부자구낭~ ㅎㅎ 돈이야 뭐 없으면 어떻습니까.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살았는데요 뭘...


그런데, 저는 때때로 감정의 휩쓸림이 너무 많은게 탈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stable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실은 와이프의 말 한마디에, 주위의 말 한마디에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태만해서 귀찮아서 하지 행동에 대한 블레임은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만, 나름 스스로를 양보하면서 취한 행동을 블레임할 때는 마음 속에 우울함이 가슴 깊이 자리를 차지합니다(많은 분들이 이럴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나 우울함을 푸는 방법을 모른다는 겁니다. 아마 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가 화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침착해 보일 겁니다. 제가 화가 날수록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구나 하고 가까운 분들은 목격하실 겁니다.


그래서 ㅎㅎ 저는 제 자신이 참 싫습니다. 아주아주 싫답니다. 편안하게 잠도 잤으면 좋겠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이며 지내고 싶습니다. 나에게 거는 기대를 귀찮다는 이유로 당당히 거절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저는 평소에 4시간 정도를 수면에 할당하고 있습니다. 보통 한 3시쯤 자서 7시에 일어나니까요. 매일 점심 때마다 운동도 합니다. 퇴근해서는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짬짬이 아르바이트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계속해서 쉬고 싶다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마음 속으로 이해 받고 싶다 생각하고, 위로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와이프와 찬우가 언제나 저의 곁에 있어주고 도닥거려 주고 위안이 되어준답니다. 그럼에도 마음은 쉬이 편치 않을때가 많습니다.

MINDPRISM의 대표이자, 그림 에세이의 정혜신씨는 책에서 이런 저를 두고 '마음 대응'이라는 심리방어기제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찾거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하거나, 자신을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등의 공격적인 '마음 대응'을 합니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응 방법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어려움을 겪고 난 일,이 년 후에 몸의 건강이 나빠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심리방어기제를 채택했던 사람들이라는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어릴 적 자전거를 배울 때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얘기 중 하나는 '넘어지려고 할 때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역설같은 순리였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넘어지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것인가 봅니다. 마음은 이미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게 쉬이 놓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괴롭고 도망치고 싶을 때, 끝없는 나락에 떨어질 때, 그 기분에 충분히 젖어들 수 없다는 사실... 이것도 참 불행인 것 같습니다 ㅎㅎ

슬프고 괴로울 때 슬픔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야 마지막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제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매일 이야기드리고 있는 우리 마음에 관한 일반론을 얘기할까 하다가, 문득 회의감이 들었답니다. 이렇게 얘기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정작 나 스스로가 그런 얘기들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였죠. 마음을 풀자 얘기하자면서도 사실은 제 스스로의 마음에 고착되어서 제 와이프의 마음 하나 어루만져 주지 못한다는 생각도 드니까요.

그래서 오늘 메일은 거를까 했답니다. 어제는 그래서 오늘 드릴 메일을 아예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퇴근해서 금방 잠자리에 들었죠. 산책가자는 와이프의 얘기도 거부하고... 미안함이 들었지만 어제는 그 모든게 힘에 붙였답니다.

그런데 출근해서 아침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런 마음들을 솔직하게 얘기하는게 진짜 마음을 공유하는 것의 시발점이겠구나... 아마도 이런 마음들을 사람들은 매일 느끼며 살지 않겠어요. 종류는 다소 다르겠지만... 내가 스스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여러분에게도 솔직하게 들어갈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죠? 삶이 힘듦에도,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도 스스로를 우울함의 끝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으시죠. 아이구 이리로 오세요 ㅎㅎ 같이 이바구 좀 합시다.

  마음 미술관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정혜신 지음, 전용성 그림
<사람 vs 사람>, <삼색공감>의 저자이자, 예리한 심리분석과 통찰력 가득한 칼럼으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세상과 사람을 차분하게 성찰하며 풍부한 영감(靈感)을 전달하는 그녀의 글과, 온기가 느껴지는 화가 전용성의 질박한 그림이 어우러져 있다. 말없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그림과 더불어, 인간과 삶에 대한 촌철살인의 성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설득력 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 개정판  김형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