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lifeislove.kr/LILY/9590

이틀전 '여행 - 기대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으로의 여정'에 대한 글에 LCD상품기획그룹의 서원일사마께서도 무작정 떠났던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던 얘기를 전해 주셨답니다. 읽고 보니 참 잼있고 저혼자 보기에는 아까워서 여러분과도 함께 공유할까 합니다 ^^ 아래는 원일씨의 글입니다. 함께 즐! 합시다.

대학 1년때 1학기 중간고사(대학 첫 시험)를 마치고 친구들이랑 술을 푸고 있었습니다.왠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갑자기 우리는 정동진 바다를 봐야겠다고 결심하곤, 술자리가 파하기 전에 저 포함 세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청량리에 도착했을때가 11시 경...

그런데 정동진가는 표가 없는 겁니다...꾸궁....또 젊은 혈기에 남자3명이서 멈출리가 없죠. 일단 정동진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는 표를 달라고 했지요. 새벽 3시경 강원도 산골짜기 한가운데서 내렸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더군요. 기차 역만이 유일하게 불빛을 내는 곳이었고, 가로등이 전무했습니다.

역앞에 택시 한대가 있길래 타서 가까운 숙박업체를 가자고 했더니 100m를 가더군요..ㅡ.ㅡ 이론 그냥 알려주지....

아무튼 방을 차지하고 창문을 여니, 정말 한치앞도 안보이는 암흑인데, 새벽경 벌레들 소리와 산냄새가 나더군요. 우리 셋은 공기를 막 들이마시면서

"그래 이게 정말 자연의 향이야~~! 정말 이런 마을은 첨 와봤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라며 맑은 공기와 벌레들 소리를 안주삼아 신나게 소주 한병을 더 까고, 잠이 들었죠.

그런데...... 다음날 창문을 파고드는 햇살에 깬 우리는 경악!! 했습니다.
창밖의 풍경은 '탄광촌', 그것도 몰락한 너무나 작은 '탄광촌'이더군요.

창밖 코앞에 위치한 산은 풀한포기 없이 석탄류의 드러난 광물로 보기 흉하기 그지 없었으며, 페인트가 바래었지만, '효성 연탄' 간판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검은 석탄산이니....달없는 밤에 보일리가 만무했습니다.

연탄 공장이었던 곳의(정리도 되지 않고 페허처럼 남은)... 공기를 그렇게 신선하게 느끼며 막 들이마셨던 거였습니다 



http://ilovetrain.com/bbs/view.php?id=history&no=318

 close
http://emeror.masterkor.com/post_7.html

왜 그런 이미지 있잖아요, 가구들은 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떠나서....다 폐허가 되고....그래서 왠지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실종된 것 같은 분위기의 마을...

몰락한 탄광촌....남은 사람들은 그나마 염소나 닭 몇마리 정도 가지고 적적함을 달래는 늙은 분들(한 다섯 분 정도 뵌 것 같네요). 폐가가 된 집들은....한쪽 벽만 남은 고대 유적과 같은 수준으로 집이었던 흔적을 남기는....그런 분위기 있지요?

'스토리가....원효대사의 깨달음을....ㅋㅋㅋ 정말로 깨달았더랬지요'

암튼, ㅋㅋㅋ  갑작스런 여행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와 준비되지 않은데서 오는 수고스러움과 불편함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다시 새롭게 그때의 기억이 떠 오르네요....



무작정 떠난 정동진으로의 여행, 그런데 엄한 탄광촌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놀랐을 법한 원일 사마를 떠올리니 웃음이 나오네요 ㅎㅎ 밤에 야~ 이런게 자연의 향이야~ 여행이야! 하며 흥분과 감동의 시간을 보냈을 텐데 말예요 ㅎㅎ 원효대사처럼 밤 늦게 마신 꿀맛같은 물이 해골바가지로 마신 것이었음을 알아차리고는 아하! 도(道)란 이런 것이구나 깨닫고 본국으로 귀환했듯이, 원일사마도 정동진의 수련의 길을 포기하고 귀환하지는 않으셨겠죠? ^^

http://211.245.104.220/thumbnail/small/4184860.gif
(해골바가지로 마신 물... --; )

역시 세상 만사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인지'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사를 아무리 이해할라고 쳐도 결국 제한된 정보와 특점 시점의 인식과 마음의 상태 (우울함, 설레임, 피곤함.. ) 에 크게 국한되고 마니까요.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그런 생각도 드네요.

여하튼! 이런 것도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얘기치 못한 발견이요 깨달음이 아니겠습니까? ^^ 저는 원일사마의 얘기가 참 잼있었는데, 다른 분들도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 있으면 공유합시다요!

아래는 네이버 지식검색에 원효의 해골물에 관한 전설을 얘기해 주신 글이 있어서 같이 인용합니다.

출처: http://k.daum.net/qna/view.html?qid=2gbnY
원효대사((617-686))는 특별히 한 스승을 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널리 배움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에 앞서가는 불교를 배우고자 하여, 당시 문화의 중심지로 불교가 융성하던 당 나라로 떠나기로 결심, 일곱살 아래인 의상 대사와 동행하였는데, 고구려 국경을 넘다가 그곳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잡혀 많은 괴로움을 겪고 다시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타오르는 구도심을 잠재울 수 없었던 원효 대사는 의상 대사와 함께 다시 구법(求法)의 길을 떠나는데 처음과는 달리 바닷길로 가기로 하고 가다가 어느 날 원효와 의상은 날이 저물어 인적이 없는 산 속에서 노숙하게 되었다. 두 스님은 바람과 한기를 피하여 무덤 사이에 잠자리를 구하고 잠을 청하였는데 잠을 자던 원효가 몹시 심한 갈증을 느껴 눈을 떠보니 캄캄한 밤중이었다. 물을 찾아 주위를 살펴보니 어둠 속에 바가지 같은 것이 있어 다가가 보니 물이 고여 있었다. 물맛을 보니 굉장히 달콤하였다. 스님은 단숨에 그 물을 들이키고 안락한 기분으로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간밤에 자신이 마신 바가지를 찾으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무덤 주위에는 바가지는 보이지 않고  해골만 뒹굴고 있었다. 스님이 바가지라고 여겼던 것은 바로 해골이었으며, 달콤했던 물은 그 해골 안에 고여 썩어 있던 빗물이었다. 스님은 갑자기 뱃속이 메스꺼워져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원효는 문득 깨달았다. '간밤에 아무 것도 모르고 마실 때에는 그렇게도 물맛이 달콤하고 감미로웠는데, 해골에 고인 썩은 빗물임을 알자 온갖 추한 생각과 함께 구역질이 일어나다니!'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한순간에 깨달음을 얻고 그 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龕)과 분(墳)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식(識)에 기초한다.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則 種種法生)
심멸즉 감분불이(心滅則 龕墳不二)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 胡用別求)
 
밤사이에 원효의 곁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의상은 다시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러다 아무런 채비를 하지 않고 있는 원효에게 물었다.

"아니 스님. 왜 길을 떠날 준비를 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당 나라에 유학 길을 떠난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입니까? "
"그야 물론 도를 구하기 위해서지요."
"이미 도를 구했다면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지요."

원 효 대사는 이 말을 남기고 의상대사와 헤어졌다. 그 길로 신라로 되돌아와, 무덤에서 깨달은 법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하였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스님의 높은 덕은 신라 땅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으며, 요석공주와의 인연으로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이두(吏讀) 문자를 집대성한 대학자 설총이었다. 대사는 그때부터 머리를 기르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 또는 복성거사(卜性居士)라 칭하며, 광대들이 굴리는 큰 박을 가지고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라는 말에서 무애를 따다가 무애무(無碍舞)라는 춤을 추고  무애가를 지어 노래하며 다녔다. 이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과 무식한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려는 뜻에서 행한 것이었다. 이렇게 행함으로서 귀족사회와 상류층에서만 신앙되던 신라의 불교를 널리 대중화시켜 누구라도 불교를 믿고 부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